‘비포’ 3부작 전체가 말하고 듣기에 대한 영화다. 제시와 셀린은 세 영화 전체에서 비언어적 방식으로 긴밀하게 소통한다. 서로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얼굴로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면서 몸은 가까이 붙이고, 혹은 그 반대로 하고, 은근슬쩍 서로의 팔꿈치나 어깨를 건드리고, 가끔은 껴안거나 입을 맞추기도 한다. 그들은 그렇게 섬세하고 미묘한 신호를 보내면서 동시에 상대가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읽으려 애쓴다.
막상 말하는 내용은 별것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적인 대화는…… 뭐, 글쎄. 그들이 소크라테스식 산파술을 쓰면서 서로의 지식을 확장하려 애쓰지 않음은 분명하다. 대신 ‘비포’ 3부작은 등장인물들만큼이나 세련되고 다정다감하게 그런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이 춤추듯 오가는 분위기를 관객에게 전해주는 데 집중한다.
쓰는 인간, 특히 쓰기 위해 듣고 말하기라는 도구를 동원하는 인간은 그런 식으로 대화하지 않는다. 취재원이 아무리 얼굴을 붉혀도 글로 인쇄될 기사 한 줄을 보태기 위해 끝까지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게 기자의 대화법이다. 언어를 기록하는 일에 매달리는 인간에게 비언어적인 소통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들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다가 흩어지고 만다. 10년, 20년의 세월을 견디고 남는 것은 기록된 글자뿐이다.
시간을 견디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하고 물을 수 있겠다. 나는 그 질문이 어쩌면 쓰는 인간과 말하는 인간을 가르는 중요한 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화와 녹음기가 생기기 전까지 말하기와 듣기는 그 행위가 이뤄지는 시공간에 집중하는 의사소통 기술이었다. 실시간 메신저가 등장하기 전까지 쓰기와 읽기는 (필담이라는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보통 마주하지 않은, 다른 시간에 있는 사람을 향했다.
더구나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서 쓰는 인간은 말하는 인간보다 일관성을 중시하게 된다. 말은 상황에 좌우된다. 그래서 말하는 인간은 쓰는 인간보다 맥락과 교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사람은 읽고 쓰기를 통해서도, 말하고 듣기를 통해서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성실히 읽고 쓰는 사람은 이중 잣대를 버리면서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게 되고, 그로 인해 반성하는 인간, 공적인 인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는 약간 무겁고, 얼마간 쌀쌀맞은, 진지한 인간이 될 것이다. 그사이에 충실히 말하고 듣는 사람은 셀린과 제시처럼 다정하고, 비언어적으로 매력적인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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