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내 또래들은 정말 엄청난 도구가 왔다, 이걸로 이제 혁명이 일어날 거다, 하고 생각했지. 모든 사람이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으로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지. 인터넷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권위를 타파해서 민주화를 이끌 거라고도 믿었어. 거대 언론이 외면하는 문제를 작은 인터넷신문들이 취재하고, 인터넷신문조차 미처 못 보고 넘어간 어두운 틈새를 전문 지식과 양식을 갖춘 블로거들이 파고들어갈 줄 알았어.
독재 국가에서는 지금도 인터넷이 그런 고발자, 감시자 역할을 해. 그런데 한국에서도 그런가? 인터넷신문이나 블로거들이 과연 그런 역할을 하냐고. 아니지. 그냥 거대 언론이 하던 나쁜 짓을 아마추어들도 소자본으로 하게 됐을 뿐이야. 거대 언론이 점잖게 기업에 겁을 주며 광고를 따냈다면 인터넷신문들은 대놓고 삥을 뜯지. 블로거들은 동네 식당을 상대로 협찬을 요구하고. 이것도 민주화라면 민주화지. 협박, 공갈, 갈취의 민주화. 누구나 더럽고 야비한 짓을 할 수 있게 되는 민주화. 그런 대신에 인터넷신문들과 블로거가 기존 언론이 쓰지 않던 무슨 좋은 기사를 내놓느냐 하면, 이런 거야. 누구누구 아찔한 뒤태, 남녀 생각 차이 열네 가지, 노래 따라 부르는 일본 강아지 화제……'
[…]
'한때는 인터넷이 영원히 익명의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 헛소문이나 추측, 잘못된 정보가 많이 나온다는 건 그때도 알았어. 그래도 좋은 정보가 많이 나오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자기 생각들을 고칠 줄 알았어. 자정작용이 일어날 줄 알았던 거지. 하지만 이제는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아.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가 없어. 오히려 그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끼리끼리 뭉치는 거 말이야. 사람들이 어떻게 TV를 보는지 보라고. 채널 돌리는 것도 귀찮아서 광고를 그냥 참고 보잖아. 인터넷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절대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고치려 들지 않아.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배우려 드는 대신, 애착이 가는 커뮤니티 두세 개 정해놓고 거기 새로운 글 올라오는 거 없나 수시로 확인하지.
그런데 그 커뮤니티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든 크게 편향돼 있어. 취향과 성향 중심으로 모인 공간이다보니 학교나 직장처럼 다양한 인간이 모이는 오프라인 공간보다 편향된 정도가 훨씬 더 심한 게 당연해. 그런 데서 오래 지내다보면 어떻게 되겠어? 처음에는 집 꾸미기나 육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거기에서 시댁이나 남편 욕도 같이 하고, 산후우울증 이야기에 공감도 해주면서 그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애착심이 생겨나지. 직장 다니면서 애 키우려니 힘들어 죽겠고, 지하철에서는 늙은이들이 자리 비키라고 행패를 부리니 이놈의 한국 사회 정말 짜증난다, 누가 그렇게 글을 올리면 폭풍 공감이라는 댓글들이 우르르 달리지.
그런데 왜 사회가 바뀌지 않지? 그건 기득권 탓이고, 정부와 재벌과 언론이 그 기득권과 결탁해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다는 댓글을 쓰는 한 사람을 다른 아홉 사람이 불편해하고 은근히 따돌리게 되네. 온건한 진보주의자 열 사람이 모여서 시국을 논의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중 세 사람은 극좌파로 변하게 돼.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들은 자기가 극단적이라는 사실도 몰라. 왜냐하면 자기 옆에 있는 아홉 사람의 평균 의견이 자신과 크게 차이 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TV보다 훨씬 나쁘지. TV는 적어도 기계적인 균형이라도 갖추려 하지. 시청자도 보고 싶은 뉴스만 골라 볼 순 없고.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달라. 사람들은 이 새로운 매체에, 어떤 신문이나 방송보다도 더 깊이 빠지게 돼. 그런데 이 미디어는 어떤 신문 방송보다 더 왜곡된 세상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심의를 받지도 않고 소송을 당하지도 않아.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최악의 신문이나 방송사보다 더 민주주의를 해치지.'
태그 : 장강명


덧글